<잡Job이야(2)> 학예사가 하는 일 VS 학예사가 하지 않는 일

2021. 12. 20. 00:48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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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직업 이야기를 해보는 <잡JOB이야> 두 번째의 세 번째(?)입니다.

학예사편 세 번째 편입니다. 이렇게 쉽게할 수 있는 말을 어렵게 썼네요. ^^;;

 

이런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에 전시기획 이란 이름으로 번역서와 국내 저자들의 책이 눈에 보이는데요. 책의 내용을 보면 학예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전시와 전시를 실행하는 PM(project manager)의 시선에 따라 다르구나 하는 경험 때문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성을 중요시 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예사가 하는일과 하지 않는 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맞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지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없고, 자르는 그 순간 칼잡이의 의도에 따라 나뉘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누어 보는 것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그 무엇'을 다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학예사가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 이렇게 나누어 생각해보는 기회는 학예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이면서 첫 단추로 넓게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학예사가 '하지 않는 일'에는 학예사가 '할 수 없는 일'도 포함되어 있으니 글을 읽으실 때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에 기초하다보니 부족한 점은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IMF 이후 연구소는 PBS가 생기면서 자신의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비를 확보하지요.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미친 영향 중 몇 가지는 아웃소싱(업무위탁)과 전문기업의 탄생이란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학교에 소사라는 분들이 계셨죠. 그런 분들이 부러지거나 파손된 책상, 의자, 학교 시설 등을 할 수 있는 한 보수를 했구요.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에서도 국립의 경우에는 기능직들이 이런 역할을 했었습니다. 전시 운영이란 이름으로 많이 했었는데요. 요즘은 거의 보기가 어렵습니다. 독일의 국립, 사립 박물관을 가보니 여전히 이런 인력들이 있었는데요. 전문분야 박사들이 내용을 구성하면, 큐레이터들이 콘텐츠를 만들구요. 기술자들이 전시장에 페인트를 칠하구요. 개별 유물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진열될 수 있도록 설치를 합니다. 물론, 막 설치하지 않구요. 유물의 특징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내부 직원인 전공분야 박사들이 검토하구요. 큐레이터는 이 두 영역을 최종적으로 조율합니다(물론,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 또는 팀 단위로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이 되겠죠). 큐레이터의 어려운 일은 바로 이런 입니다.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공부하고, 유물이 진열되기 위한 테크닉도 알아야 하구요. 이 둘을 잘 조율하여 전시 콘텐츠 또는 유물과 관람객이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가는 '독박'(전문가도 기술자도 자신의 해당분야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일치하는 사례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 그러니까 학예사가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아웃소싱이 일반화된 현재는 어떨가요? 국립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이 비슷하지만 사업 운영방식도 많이 다른데요. 비슷한 점은 전시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전시 기획을 할 때에 어떤 유물, 작품, 전시품이 필요하며 어떻게 구성하여 콘텐츠로 엮어 메세지를 전달할 것인가? 전시와 관람객의 소통을 만들어 갈 것인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포함하지만, 전시 인테리어의 조명과 칼라, 유물의 위치를 포함한 전시실의 도면까지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획 -> 개념설계 -> 실시설계 -> 설치"라는 네 단계로 구분한다면, 기획과 개념설계까지를 학예사가 하는 것은 맞구요. 실시설계와 설치는 학예사가 하지 않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에서 직접하지도 않구요. 대체로 아웃소싱을 주어서 합니다. 그러니까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용역사를 선정하여(대개는 조달 발주를 진행하지요) 전시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용역을 아무나 줄 수가 없죠. 대부분 이것을 위해서 내부 심의(보고와 전시운영 심의 등)를 거친 후에 계획을 근거로 제안요청서를 작성하여 용역사 선정 업무를 하게 되죠. 예를 들면, 제안서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통보합니다. 전시가 끝나면 사업결과 보고 후에 검사(검수)를 진행하구요. 학예사의 행정 부담은 이런 것에서 생깁니다. 상대적으로 행정업무가 덜한 곳은 품의서를 작성하지 않지만. 그러니까 행정직원이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곳은 이런 업무까지 하다보니 행정업무가 꽉 차 있게 되는거죠.

 

(아이콘)전시장 by 허윤선, 이혜린, 오승현, 김소연, 공유마당, CC BY

 

학예사가 하는 일은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에 따라, 행정업무를 어느 수준까지 지원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는 일은 전시를 기획하고 개최하여 운영되는 동안 또는 초기 세팅까지는 관여를 합니다. 

어쩌다 보니 글이 세 개가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