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Job이야(8)>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전문성을 담당하고 콘텐츠의 책임자 연구자(researcher)

2022. 1. 24. 00:45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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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직업 이야기를 해보는 여덟 번째 글입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전통적 관점을 이전의 글에서도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ICOM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외 기관에서 박물관의 정의는 우수한 가치를 지닌 자료를 수집, 조사, 연구를 하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미래세대를 위해 유물의 원래 모습을 보존하고, 우수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전시하고 교육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우수한 역사, 문화, 과학 등의 가치를 잘 연구해서 동시대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과 소통하자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들은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뽑내는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바로 연구자들입니다.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의 최고 단계인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거치는데요. 대체로 박사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내의 경우에는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에서 이런 유물들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관심은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운영하는 기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언론을 통해 관심을 받는 가와 같은 것을 지표로 삼는데요. 만일,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직원을 보유하고, 가장 많은 예산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연간 1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만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기관장과 부서장, 학예사들은 견딜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이 같은 것들을 대놓고 지표로 설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요.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국내에서 연구자들은 주로 학예업무를 보기 때문에 연구역량을 보여주기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그 역할이 필요한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연구자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란 책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책의 주요 내용은 수장고와 연구실에서 전공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의 이야기, 자연사박물관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리처드 포티의 연구자로서 삶과 이야기들을 보여주는데요.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국내의 현실에 대해서 아쉬웠던 점은 실제 연구가 이들처럼 이루어지도록 연구자들을 가만두지 않으며, 이 연구자들은 학예사라는 이름으로 온갖 전시에 관여를 하면서, 사실상 상설전시나 특별전시를 하면서 콘텐츠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우리가 그 동안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연구자들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과 같은 그런 류의 연구를 수행할 수 없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그런 연구는 우리나라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에서 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스미소니언은 공식적으로 Smithsonian Institue는 사실상 국립연구소이며, 이 연구의 성격을 갖추고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을 운영합니다. 그래서 스미소니언은 유물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전시에 대해서도 연구한 결과를 스미소니언이라는 이름을 달고 보여줍니다. 스미소니언이 더 무서운 것은 홈페이지의 이름입니다. si.edu 인데요. 자신들은 교육기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미소니언은 적절한 인력과 함께 연구와 같은 기초가 튼튼하면서 교육으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은 이런 부분. 연구라는 기초가 부족한 상태에서 전시행위로 소통을 해 나가지만 교육을 한다는 것이 매우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기초연구를 하기 어려운 현실에 늘 부딪히며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학예 인력들은 자신의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전시사업을 운영하는데요. 여기서 경력이 많은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즉, 조직적으로 학예 일을 하느라 사업은 원만하게 진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새로운 공부에 임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습니다. 특별전의 경우에는 매번 새로운 전시를 진행하다보니 늘 새로운 공부를 해나가야 하구요. 역사 전공자가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 전공자가 예술을 공부해서 전시를 한다면. 그 고충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연구를 기초로 잘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연구자들이 학예 일을 하기 때문에 연구쪽이 현재는 비어있다고 보는 것이 맞고요. 이 연구자들은 상당한 업무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현 주소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전시도 연구가 아니냐고요? 일정부분은 맞지만 일정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조직의 성과로서 실적으로 인정받을만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학술적 연구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공통되는 현상으로 보이는데요. 그 근거는 museum, curator 등을 키워드로 sci, scie, ssci, scopus 등이 저널들을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차후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시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학술적 연구와는 구분이 필요하며. 이 같은 연구결과들이 유의미한 스토리로 연결될 때에야 비로소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시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은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의 과거 소장품과, 미래의 소장품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전시와 교육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기초사실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풍부한 전시가 될 수 있으며, 그 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하고, 새로운 전시콘텐츠들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한편, ICOM은 박물관의 정의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는데요. 오브제에 대한 초점을 휴먼으로 옮기는 듯해 보입니다. 멀리 내다보는 개인적인 생각은 연구자들이 이제는 유물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을 두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현재는 물론 미래를 달리는 연구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게 되면, 학예는 누가 하냐고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전시 기획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